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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천왕 발아래에 담긴 익살




사천왕 발아래에 담긴 익살


 통도사에 있는 사천왕. 사진 왼쪽부터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

사찰의 문을 들어서면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겼으며 눈은 커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모습의 사천왕이 절문에서 떡 버티고 있다. 괜히 죄지은 사람마냥 바라다보기가 겁나고 지나가면 손으로 잡을 것만 같아 불안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절에 가기가 무섭다고들 하지만 사천왕의 역할과 중생을 위한 마음씀씀이를 알고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신이 없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고민을 덜어주며, 더욱 선(善)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자상한 신이다.




죄 지은 이 “무서워 보여”  덕 쌓은 이 “자상해 보여” 


 동서남북지켜…각각 도량수호.국태민안 등 임무 

 인간들 위하는 고마운 선신…사찰 출입땐 합장을 

 발밑의 각양각색 생령좌, 억울한 표정 “재미있어” 



어느 사찰이든 거의 사천왕문이 있고 그 안에는 사천왕이 사찰에 들어오는 불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해학적 익살과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사천왕은 왜 험상궂을까? 아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험상궂게 보았을 뿐이지 즐거운 마음으로 살펴보며, 인상을 따라해 보면 웃음이 나온다. 내가 사천왕이 되어 보자. 그러면 재미를 느끼고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사천왕(catvasrah maha-rajikah)은 인도 고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이지만 불교에 귀의하여 불교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항상 부처님과 함께 하여온 인간의 바로 위 하늘의 신들이다. 

보통 사천왕은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천(四天), 호세사왕(護世四王)이라고도 하며, 욕계 6천의 첫 하늘인 사천(四天)의 천주(天主)로서 사람들이 사는 곳 4대륙 중 남 염부제(閻浮提)수미산의 중간에 머무는 세상을 지키는 하늘이다. 그 바로 위 하늘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이 주재하는 도리천의 명을 받아 사천하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동작을 보고하는 등 제석천을 도와 불법을 수호한다. 

이들은 부처님을 호위하며 사찰을 지키고, 인간의 선악을 살펴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선신들이기에 무서워하지 말고 친구처럼 지내면 큰 득이 있을 것이다. 

먼저 사천왕이 머무는 문의 이름이 사찰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다수가 천왕문으로 부르지만 승군이 머물렀던 주둔지에는 사찰과 백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옹호문(擁護門’), 인간들을 잘 살피겠다는 뜻의 회전문(回轉門),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겠다는 뜻의 법왕문(法王門)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문안의 사천왕의 명칭과 역할은 같다. 

먼저 들어가는 방향으로 오른쪽 윗부분이 동승신주(東勝身洲)로 지국천왕(持國天王)이 있다. 동방을 맡은 지국천왕은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지키며(持國) 백성을 편안(安民)하게 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국토를 수호하고 백성을 보살피는 것이 그 주된 임무라 할 수 있다. 손에 비파를 들고 항상 음악을 연주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니 나라는 자연적으로 부강해 지고 안락하여 스스로 나라가 지켜지는 것이다. 

<사진> 보림사 생령좌. 

오른쪽 아랫부분이 남섬부주(南贍浮洲)로 증장천왕(增長天王)이 있다. 남방을 맡은 증장천왕은 불자들의 지혜와 복덕을 늘려주고 이익을 증장시켜주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그래서 들고 있는 칼로 인간의 번뇌를 끊어버리면 바로 지혜가 나오므로 번뇌를 끊는 취모검을 들고 인간의 지혜와 복덕을 늘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천왕문 왼쪽 아랫부분이 서우화주(西牛貨洲)로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있다. 서방을 맡은 광목천왕은 말 그대로 부릅뜬 눈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나쁜 말을 굴복시킨다. 인간의 선악을 살펴 그것에 상응하는 상과 벌을 준다. 손에 용과 여의주을 잡고 있어 조화를 부린다. 

천왕문 왼쪽 윗부분이 북구로주(北俱盧洲)로 북방을 맡은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있다. 다문(多聞) 또는 보문(普聞)의 뜻으로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면서 불법을 듣는다는 뜻에서 다문천왕이라 한다. 그래서 손에는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탑(寶塔)을 들고 있고 부처님 말씀을 많이 듣고 인간에게 많이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다문천왕의 경우 통일신라시대부터 거의 탑을 지니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어 사천왕의 방향 및 이름을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사천왕은 인간들을 위해 노력하는 고마운 선신이다. 그래서 사찰을 찾는 불자들은 사찰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꼭 사천왕에게 합장 인사하며 그 고마움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한다. 

먼저 통도사 천왕문의 동쪽 지국천왕과 남쪽 증장천왕을 살펴보자. 사진 좌측 지국천왕은 하늘의 보관인 천관(天冠)을 쓰고 흰 수염을 늘어뜨리고 인자하게 웃으며 노래를 한다. 비파의 가락에 맞추어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천상의 노래를 불러 나라를 수호하고 백성을 안락하게 한다.

<사진> 선운사 생령좌.

부처님께서 “나라는 백성이 안락하고 부강하면 스스로 지켜지는 법이며, 무기로 나라를 지키고자 한다면 끝내 그 나라는 멸망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러한 부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나타낸 것이 바로 지국천왕이다. 그래서 지국천왕은 항상 웃는 얼굴과 입을 벌려 노래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국천왕의 비파소리에 귀 기울여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또한 사진 우측의 증장천왕은 젊은 모습으로 힘 있게 칼을 잡고 있다. 인간의 번뇌를 한칼에 없애버리는 듯 입을 꽉 다운 모습에서 번뇌를 잘라 지혜와 복덕을 늘려주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엔 천왕문 서쪽의 광목천왕과 북쪽의 다문천왕을 살펴보면, 사진 좌측의 광목천왕은 제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고 인간을 살핀다. 한손엔 용을 잡고 한손엔 여의주를 쥐고 있어 인간의 선악에 따라 상과 벌을 명확히 하는 것 같다. 사진 우측의 다문천왕은 높이든 손엔 보탑을 들어 부처님을 받들고 정법을 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손엔 삼지창을 들어 불교를 외호하는 의미를 두고 있다. 다문인 것처럼 부처님 말씀을 많이 듣고 많이 알리려고 입을 벌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사찬왕의 발밑에는 ‘생령좌’라는 귀신을 두어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다음 생에 혹시 사천왕의 발밑에 깔리는 고통을 받지나 않을까? 자신의 마음을 이곳에 견주어 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진> 보경사 생령좌.

보경사 생령좌를 보면 이 생령좌는 남성으로 자기의 잘못을 감내하며 고통을 참고 있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으니 벌을 달게 받겠다”는 뜻이 꼭 다문 입술과 바로 뜬 두 눈, 고개를 든 얼굴에 역역하다.

그러나 선운사 여자 생령좌는 사천왕의 다리에 눌려 있으면서도 아직도 반성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왜 죄는 나만 지었는가? 상대 때문에 지었지.”원망의 눈초리가 역역하다. 입은 씰룩거리고 한쪽 눈은 감고 다른 한쪽 눈은 크게 떠서 사천왕에 눌려 고통스럽기 보다는 아직 억울하다는 듯 쪽진 얼굴을 돌려 원망을 표출한다. 참으로 재미있는 표정이다. 원망의 눈빛에는 오뉴월 서리발이 내려지는 듯 한기를 느끼게 한다. 잘못을 하고도 감히 대드는 해학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뿐만 아니라 보림사 생령좌는 사천왕의 다리를 들고 있는 것이 재미난 듯 즐거워한다. 삐죽 나온 송곳니에 무쇠팔 근육을 자랑하며 가볍게 사천왕의 다리를 들어 올린다. 

사천왕 발밑을 보아도 별의별 형상의 생령좌를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우리 조상들이 표현하고자 한 다양함 속에 느끼는 특별한 재미를 해학이란 이름으로 만날 수 있다. 

사찰의 조형물을 세세히 살펴보면 그곳에 웃음이 몰래 숨어 있을 것이다. 사천왕의 발밑에…. 

권중서 / 조계종 전문포교사 


[불교신문 2426호/ 5월14일자]